구겨서 버리기 전에,
한때 희망이었던… 것들을 기록해봅니다.
용산의 낡은 슈퍼마켓 옆에 복권 명당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붙어 다닌 친구에게 줄 복권을 오천 원어치 사러 갔다가, 그날 처음 만난 내 몫도 함께 사 왔다.
바나나우유와 복권을 머쓱하게 내미는데, 그게 그렇게 감동이었다. 오래된 친구를 챙기는 익숙한 일에 나까지 슬쩍 끼워 넣어 준 것 같아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친구가 오만 원짜리 딱지를 끊었다. 내게 건넨 오천 원은 그렇게 다정했는데, 그날의 마무리는 열 배나 비쌌다. 생각하면 아직도 고맙고, 조금 웃긴다.
당첨되면 가게 문에 하루만 쉬어 간다는 종이를 붙이고 싶었다. 늦게 일어나 식지 않은 커피를 마시고, 아무 약속도 없이 동네를 걷고 싶었다. 큰돈으로 하고 싶은 일이 고작 하루의 휴식이라는 게 조금 우스웠다. 번호를 확인한 다음 날에도 나는 평소처럼 문을 열었다. 커피는 또 식었지만, 그 하루는 아직 마음 한쪽에 남아 있다.
친구가 복권 한 장을 건네며 당첨되면 반씩 나누자고 했다. 선물에도 조건이 붙는구나 싶어 웃었다. 그날 우리는 아직 없는 돈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바다가 보이는 방을 고르고,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지 정했다. 맞은 번호는 몇 개 없었지만, 복권을 받았던 날의 대화는 또렷하게 남았다. 다음에는 복권 없이도 함께 가자고 말해야겠다.
당첨되면 엄마와 집을 보러 가고 싶었다. 가격을 먼저 묻지 않고 창문을 열어 보고, 오후에 볕이 어디까지 들어오는지 살피고 싶었다. 엄마가 이 방은 어떠냐고 물으면 좋다고, 엄마가 마음에 들면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번에도 집을 보러 가지는 못했다. 대신 주말에 엄마를 만나 밥을 먹었다. 볕이 좋은 자리에 앉아, 언젠가 보고 싶은 집 이야기를 조금 했다.